시 9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쉬운성경>
우리 인생이 주의 분노 아래 있으니
우리는 일생을 한숨 지으면서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
사람을 지으시고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자녀를 처음 품에 안은 부모가 감격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를 바라보셨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성경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한다.
창세기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시며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아가서에 나오는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처럼,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아가 2:10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으셨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들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유혹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성경은 아주 놀라운 표현을 사용한다.
창세기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셨다.”
“마음에 근심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아픔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하나님의 분노를 인간의 분노와 다르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분노는 저주와 폭발, 짜증과 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찾아오는 깊은 슬픔에 가까울 것 같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고, 바른길을 걷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자녀가 그 기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
부모는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화의 가장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니?”
“나는 네가 잘되기를 바랐는데…”
“나는 너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었는데…”
그 서운함과 안타까움과 슬픔이 뒤섞인 마음.
어쩌면 하나님의 분노가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분노.
기대하기 때문에 생기는 아픔.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슬픔.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한다.
시편 9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분노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죄로 망가진 인간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여전히 아파하고 계신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시편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은 참 짧다.
돌아보면 정말 순식간이다.
하나님의 분노, 곧 하나님의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은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하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각과 일을 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분노 아래 오래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세상의 타락 속에서 살아가고,
끊임없는 유혹에 흔들리고,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쓰고,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을 낭비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기대하셨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나 역시 그렇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실 때
기뻐하시는 모습보다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 더 많지는 않을까.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한 위로도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습을 보시며 아파하신다는 것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망도 없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아픔도 없다.
하나님의 분노 속에는 여전히 사랑이 있다.
하나님의 서운함 속에는 여전히 기대가 있다.
하나님의 탄식 속에는 여전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다시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삶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을 때 품으셨던 기대를 생각하며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생각 하나,
내가 사용하는 시간 하나,
내가 만나는 사람 하나,
내가 선택하는 작은 일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며
처음 사람을 지으셨을 때처럼
다시 “심히 좋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분노 아래 살아간다.
그러나 그 분노는 나를 버리신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분노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랑 앞에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다.